심리학은 인간들의 행동들과 심리 과정들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적인 과목으로서, 인문과학에서부터 자연과학 공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 공헌하고 있다. 인간이 관계 맺은 모든 분야에 서서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사고들에 관한 연구인 심리학의 학문적 뒷받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되어가면서는 인간의 삶의 질과 관계된 미분제들이 점점 더 중요성 들을 더해지고 있고 이러한 문제들에는 감각 지각 사고 성격 지능 적성 등의 인간 특징들이 고려되어야 하므로 인간의 행동과 기저 원리를 밝혀주는 심리학은 미래 사회에서의 그 중요성을 점점 더해갈 것으로 예상된다.심리학은 연구 분야에 따라서 크게 심리학의 기초적인 원리와 이론을 다루게 되는 기초심리학과 이러한 원리와 이론의 실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응용심리학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2020년 기준으로는 한국의 경우 14개 분과 미국의 경우 본과 제외하고 56개의 분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정신 과정 영혼에 대한 학문이라고 정의되는 심리학이란 다양한 접근방법과 그만큼이나 조금씩 그 정의의 폭들을 달리할 수는 있겠으나 과학적인 절차를 수용하기 시작한 근대의 심리학 이후에서는 적어도 행동에 대한 과학이라는 협의의 정의를 빼놓을 수는 없다고 한다.기원전부터 심리학에 대한 개념을 사용하지만 않았을 뿐 심리학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부터 쭉 있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의 정립 이전의 심리학은 그 경계가 모호하였으며 철학자들이 다루는 영역으로만 간주하여 왔었다.
일찍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론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에 대한 논쟁은 르네상스 이후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특히 데카르트는 유명한 심신 문제에 있어서 이원론을 주장하기도 하여 마음과 몸이 별개의 실체임을 주장하면서 마음에 대한 경험적 과학적 탐구를 중시하는 현대 심리학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파티마 칼리 파조의 선구적인 과학자 이쁜 앓아 이 팀은 1010년 출간된 그의 광학이라는 책에서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심리학적인 개념으로서 시각을 설명하고 있다. 독일 스콜라 철학자는 루돌프괴켈은 1590년 출간한 그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조건을 사용한 심리 실험을 다루고 있었다. 이보다 60년 전 크로아티아의 휴머니스트 마르코 마루 읽은 조건들을 사용한 그의 작업 목록들을 남기었으나 그 내용들은 소실되었다. 독일의 형이상학 철학자 볼프가 그의 저서 심리 실험과 심리추론을 출간함으로써 조건을 사용한 실험은 일반적인 심리 실험의 방법이 되었다. 디드로는 이러한 심리 실험과 심리 추론의 차이점에 대해 그의 백과사전에 기술도 하였고 비강에 의해 프랑스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의사인 윌리스는 정신과적 치료의 목적으로 노의 기능을 연구하면서 정신의 법칙을 다루는 학문으로써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로써 이후 19세기에 이르러 심리학은 철학에서 완전히 분화되어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심리학의 성립으로 보면 흔히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 국채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첫 심리학 연구소인 정신물리 실험실을 문 달았다. 그는 심리학을 연구하는 동안은 밥법론으로 내성법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미국의 철학자 제임스는 1890년 심리학의 원리를 출간하였다. 그는 당시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요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책을 저술하였다. 에빙하우스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기억에 대한 선구적인 실험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또한 러시아의 파블로프는 유명한 고전적 조건형성 실험을 통하여 학습 과정을 연구하였다. 형태주의 심리학은 1910년에 1912년에 걸치는 동안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독일 심리학자 베르트하이머가 자신의 논문을 통해 일상적인 지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시기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의 창립에서는 물리학자인마흐, 철학자 에렌펠스, 칼 슈툼프의 세 사람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마르는 특정한 공간 더 기본일 수 있는 요소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을 하였다. 또한 에렌펠스는 "형태질"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특정한 경험의 질은 개별적 감각 요소 이상임을 역설하였다고 한다. 슈툼프는 독일 국채와의 논쟁 과정에서의 숙달된 청자들이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음악적인 관찰자로서 더 적합함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후에도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영향 아래 성장하였다고 한다.베르트하이머라는 사람은 가현운동에 주목하였으며, 여기서 실제로는 없었던 지각된 움직임을 '파이 운동'이라 불렀다. 이를 토대로 그가 주장하기를 "부분 과정 자체가 전체의 고유한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 연구로서 게슈탈트 심리학의 문을 연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베르트하이머의 피험자였던 코프카와 콜로 역시 게슈탈트 심리학자였다고 하며, 모두 슈툼프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나 코프카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미국국가로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하며, 콜이라는 이후 게슈탈트 이론의 보급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나 게슈탈트 현상이 어떤 원리로 조직되는지에 관심도를 기울여 연구하였으며, 이 연구들로 밝혀져 온 것들을 게슈탈트 체제화 원리라 이름을 붙여서 발표하였다. 이 원리는 근접성, 유사성, 좋은 연속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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